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오후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있는 협력회사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면서 파이팅 구호를 제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28일 오후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있는 협력회사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면서 파이팅 구호를 제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화두는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뜻의 ‘승어부’(勝於父)로 요약된다. 2020년 12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며 스스로 곱씹었던 다짐이다.

하지만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사실상 삼성의 사령탑으로 지낸 지 이미 8년이 넘은 만큼 ‘뉴 삼성’ 기치만 외쳐선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용 시대’를 보여주기 위한 구체적인 메시지 선포와 과제 달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3일 삼성에 따르면 올해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지 29년째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면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강도 높은 혁신을 지시했다. 이후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요구대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신경영 선언이 후대 기업인들에게 늘 유의미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따라서 이건희 회장을 뛰어 넘겠다는 이재용 회장의 경영철학에 재계의 궁금증이 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회장은 승진에 앞서 이미 강력한 리더십 구축에 나선 상태다. 인공지능(AI), 5G, 바이오 등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는 ‘기술 투자’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준법 감시와 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는 ‘투명 경영’의 일환이다. 삼성의 오랜 기치였던 무노조 경영을 과감히 폐지하고 사상 처음으로 노조와 임금협약 체결식을 가진 것은 ‘조직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 사이에는 여전히 삼성의 결정을 벤치마킹을 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이 회장의 고민이 담길 삼성의 경영철학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인재양성에도 무게를 싣는다. AI 분야 최고 석학으로 알려진 승현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를 삼성리서치소장(사장)으로 영입하는 데 직접 나선 바도 있다. 이 회장이 인재를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갖게 된 건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영향이 크다.

이병철 회장은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공채를 도입해 새 바람을 일으켰고, 이건희 회장은 입사 자격 요건에서 △학력 △국적 △성별 △나이 △연고 등을 제외한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해 파격을 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정기 사장단 인사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회장의 신경영 구상을 엿볼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다. 성과주의 원칙에 기반한 인재 등용이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역사상 첫 여성 사장 탄생 여부가 주목된다.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 여부도 변수다. 조직개편으로 임직원의 보직이 연쇄 이동될 수 있다. 다만 지난해 김기남(DS)·고동진(IM)·김현석(CE) 대표이사 및 부문장을 교체하고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과 경계현 DS부문장(사장) 투톱 체제로 전환한 만큼 올해는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을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컨트롤타워 복원 가능성은 남아 있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폐지한 뒤 현재는 사업 부문별 3개의 TF를 구성해 대응 중인데, 재계에선 이 회장이 전체 계열사를 총괄하는 위치에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컨트롤 타워를 복원시킬 것으로 본다. 다만 당시 미래전략실 해체를 지시한 것도 이 회장이어서 가능성은 반반이다.

뉴삼성의 사업적인 밑그림은 ‘미래 먹거리 마련’으로 압축된다. 이는 올해 5월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과 11월 공개한 바이오 투자 비전 등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바이오, 차세대 통신, 신성장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등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한다.

특히 2030년까지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향후 5년간 171조원을 투입한다. 지난 3분기엔 대만 TSMC에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내줘 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를 위해 대형 M&A 추진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2016년 전장 기업 하만을 인수한 뒤 글로벌 M&A 시장에서 존재감이 적다.

이 회장은 바이오 사업도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먹거리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2032년까지 바이오 사업에 7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압도적 초격차’를 이룬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2015년 이후 7년 만에 송도 바이오 캠퍼스를 찾으며 바이오 사업으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삼성 경영의 전반을 지휘하는 책임 경영의 ‘마지막 퍼즐’은 등기이사 복귀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 관련 의사 결정을 내린다. 법적 책임을 지는 자리다. 이 회장은 3년 전 임기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바 있다. 2018년 삼성그룹 동일인(총수) 지정과 지난달 27일 회장 취임에 이어 등기이사에 올라야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완료하게 된다.

이 회장은 책임경영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사법리스크’다. 이 회장은 일주일에 1, 2회 정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혐의 재판을 받고 있다. 회장 승진은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가능했지만, 등기임원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주총 결의를 거쳐야 한다. 이 회장의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광복절 특사’로 해제된 취업제한이 다시 선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 설득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이 회장이 승진한 현재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시각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외교안보의 중심으로 기술이 떠올라서다. 양 의원은 “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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