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부인 정지선씨가 6월27일 오전 장녀 진희씨 결혼식이 열리는 서울 중구 정동교회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부인 정지선씨가 6월27일 오전 장녀 진희씨 결혼식이 열리는 서울 중구 정동교회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1+1=2’라는 등식은 때론 누군가에겐 인정할 수 없는 오답이 됩니다. 예컨대 재벌 일가엔 결혼 상대를 고르는 문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익을 얻어야 할 ‘사업’ 중 하나입니다. 혼맥이 곧 돈이자 권력인 ‘슈퍼 리치’들은 가문의 결합으로 반드시 ‘3 이상’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쌓아올려야 했던 창업주와 2세대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정략결혼’을 통해 회사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7일 한 대기업 관계자에게 오너 후계자 결혼 문제를 묻자 그는 “사적인 영역”이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신뢰도는 물론 명운까지 좌우할 수 있는 재벌가의 혼사는 실상 ‘공적인 영역’과 다름없습니다. 과거 고도성장기 정치권력과 혼맥을 맺으며 사세를 키워온 재벌들의 행보가 이를 방증합니다. 기업의 성장 토대를 다지거나 수익 창출에 영향을 줄 여지가 많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실제 1~2세대 재벌들이 장관급 관료 출신 가문과 결혼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김기형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동생인 김기병씨와 결혼한 범롯데가 오너 1세대 신정회 동화면세점 대표가 첫 손에 꼽힙니다. 홍진기 전 법무부‧내무부 장관의 장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결혼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역시 재계-정계 혼맥을 구축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부인은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의 딸 서영민씨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인 김영명 예올 이사장과 결혼 뒤 7선 국회의원으로 거듭났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결혼하면서 정계와 연을 맺었습니다.

근래 들어선 재벌의 결혼 풍속도가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3~4세대는 혼맥 구축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공부 하면서 인연을 맺거나 사내연애 후 백년가약을 약속하는 등 ‘썸’ 타서 결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투명 경영을 강조하는 윤리 정신이 강화되고,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가는 MZ세대의 특성이 맞물린 흐름입니다.

특히 현대가는 혼사 문제에 있어서 유독 자녀들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호사스러운 결혼식을 지양하고 스몰웨딩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주로 정동제일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릅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대부분이 화촉을 밝힌 곳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딸 원주씨와 함께 정의선 회장 장녀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딸 원주씨와 함께 정의선 회장 장녀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 진희씨의 결혼식도 정동제일교회에서 진행됐는데요, 재밌게도 그의 결혼식에서는 현대가의 딸보다 삼성가의 딸이 더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딸 원주 씨가 하객룩으로 입은 베르사체 원피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드레스로 재계 서열 1위 기업의 총수인 아빠보다 돋보인 원주씨는 단숨에 재계 패셔니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00만원에 육박하는 드레스의 완판을 이끌어내며 ‘완판녀’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원주씨의 패션은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더 명품으로 포장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곧 성인이 되는 원주씨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행사 참여 횟수가 늘어날수록 대중이 미디어에서 그의 패션에 주목하는 빈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원주씨가 패션의 사업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베르사체 원피스를 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재벌가 장녀의 ‘픽’이 준 효과가 분명히 나타난 만큼, 향후 패션 등을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트렌드가 미혼 재벌들에게 유행처럼 번질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연애 결혼을 추구하는 재벌가 자제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은 ‘아나운서’입니다.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는 지난 2006년 현대가 3세 정대선 NH그룹 사장과 갑작스레 결혼하면서 주목받았습니다. 두산가 4세인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는 1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2018년 조수애 전 JTBC 아나운서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서울신문 인수 등 미디어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호반가의 김대헌 호반건설 대표는 2020년 김민형 전 SBS 아나운서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아예 포털 사이트에 이름이 검색되지 않는 일반인과 결혼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화가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2010년 함께 한화에 입사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배우자와 10년 열애 끝에 2019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SK가의 장녀 최윤정씨는 2017년 IT 벤처기업인과 결혼했고, 같은 해 오뚜기가의 장녀 함연지씨는 한 대기업 임원의 아들로 알려진 남자친구와 부부 사이가 됐습니다. 모두 연애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들 재벌가는 혼사를 리스크 관리나 사업 확장 도구로 쓸 일이 거의 없는 사업 경쟁력이 탄탄한 기업들입니다.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혼맥을 비즈니스로 연결한 결과, 온갖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던 재벌가의 결혼 풍속도가 세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벌들도 이제 본인의 사랑과 결혼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재벌가에서도 통용되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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