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최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인 삼성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의 영정사진을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그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입니다.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행운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에게 이름 석자가 잘 알려져 있진 않습니다. 

이재관 전 부회장의 집안이 삼성에서 분가한 그룹 중 유일하게 몰락한 탓에 상대적으로 외부에 노출된 상황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재관 전 부회장의 아버지는 이병철 창업주의 차남인 고(故) 이창희 회장입니다. 이병철 창업주를 총수 자리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내용의 투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가 부자(父子)의 인연이 끊긴 이창희 회장은 삼성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비디오테이프 사업으로 이름을 알리던 새한미디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창희 회장은 야심을 채 꽃피우기 전인 1991년, 58세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인 이재관 부회장이 제일합섬 지분을 넘겨받아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1997년 새한그룹을 출범시켰습니다. 새한그룹은 출범 2년 만에 계열사 14개를 아우르며 재계 순위 25위 반열에 오르는 등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룹 출범 전부터 줄곧 유지한 확장기조가 성공을 거두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대대적인 사업확장은 몰락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사양길에 접어든 비디오테이프‧필름 사업에 1조원이 넘는 투자에 나선 뒤 새한은 그룹 전체가 휘청이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IMF 금융위기라는 국난이 겹치자 새한그룹은 속절없이 쓰러졌습니다.

결국 새한그룹은 2000년 5월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삼성의 방계그룹 중 유일한 공중분해 사례입니다. 새한그룹이 몰락한 뒤 이재관 부회장은 삼성가 모임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등 두문불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범삼성가 인사들은 집안 행사에서 한발 비켜나 있던 건 물론 세인들의 뇌리에서도 잊혀져간 이재관 부회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유럽을 출장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화를 보낸 가운데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회장 등이 빈소를 방문해 굴곡 많은 새한그룹의 역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인물들이 있습니다.

신세계그룹 집안 사람들입니다. 이창희 회장의 친동생으로 이재관 부회장의 고모인 이명희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을 대거 이끌고 빈소를 찾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 이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은 범삼성가 인사 중 가장 먼저 장례식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틀 연속 빈소를 지키며 남다른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경영을 선언한 해는 이창희 회장이 생을 마감한 1991년입니다. 비디오테이프 시장을 주름 잡았던 새한미디어를 그룹의 토대로 삼고도 성장 전략 실패로 몰락한 새한에 빗대보면, 달랑 백화점 하나를 기반으로 신세계를 재계순위 11위의 재벌로 만든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다만 모자(母子)의 경영스타일은 판이합니다. 이명희 회장에겐 ‘은둔형 총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전문 경영인에게 전권을 맡기는 대신 결과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등 막후 조정 역할에 집중합니다. 

그와 달리 정용진 부회장은 ‘얼굴 들이밀고 할 말 다하고 사는’ 재벌 오너의 새 지평을 연 인물입니다. 요리하는 모습 하나만으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유튜브에 영상으로도 공개합니다. 우주에 가서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정치적인 발언이 금기어가 될 만하지만 그는 공산당을 멸한다는 의미의 ‘멸공’(滅共)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용진 부회장의 모습은 앞으로 재계 총수들의 지배적인 행동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재벌 총수의 인간적인 모습에 환호하는 소비자들을 충성 고객으로 확보하려면 ‘소탈하고 유연한 CEO’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발 맞춰야 하는 시대라는 점을 경영자들 스스로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택에서 조용히 경영 구상을 하며 신비주의를 자처했던 기존 총수들의 모습과 차별화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점잖고 조용한 성격으로 ‘모범생 CEO’로 알려졌던 함영준 오뚜기 회장을 예로 들만 합니다. MZ세대인 딸 함연지씨와 함께 유튜브에 출연해 유쾌한 수다를 곁들여 ‘먹방’을 펼치는 모습은 요즘 총수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자사의 유튜브 ‘스마트머니’에 출연해 직원들과 격의 없이 토론을 펼치는 모습은 수직적인 토론문화에 익숙한 직장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깁니다.

새한그룹의 몰락에 비쳐보면 ‘부자는 망해도 3대(代)를 간다’고 했던 옛말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이미 생각보다 오래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영 능력이 입증돼야 갖은 풍파가 끊이지 않는 재계에서 권좌를 지켜낼 수 있는 때입니다.

경영 승계 1순위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남 또는 장녀이기 일쑤인 재벌가의 분위기 속에서, 삼성은 달랐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빛이 바랬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병철 창업주의 자녀 3남 5녀 중 가장 출중한 경영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 사람은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인 故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이병철 창업주의 사람 보는 눈이 옳았던 셈입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